2023년 6월 15일 목요일

한국 커피계의 역사(쓰리박 중심)

 앞선 글에서 대한민국 반도에 어떻게 커피가 도입되어 확산되어 왔는지에 대해 간단히 정리를 했다.

(http://trmcap.blogspot.com/2023/06/blog-post_15.html)



고종이 마셨던 커피는 드립(Drip) 커피였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며 C레이션에 포함된 인스턴트 커피를 선호하게 된 후

60~70년대 커피 두 스푼, 프림 한 스푼, 설탕 한 스푼의 다방 커피가 트렌드를 잡았고 


80년대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판기와 대량 생산된 액상 커피가 나오면서

어느 순간 자판기 커피와 캔커피의 천국이 되었다.


90년대부터는 나이스데이, 네스카페 등 커피 전문점 들도 

대기업 중심으로 진입했다가 철수하는 스토리가 있었고

90년대 말에는 아예 스타벅스가 들어오며 현재의 대한민국 커피계가 만들어졌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드립 커피의 한국 역사를 간단히 짚어보고자 한다.


흔히 커피계에는 일(1)서 쓰리(3)박이라고 서씨 한 명과 박씨 세 명의 영향력이 지대하다고 한다.

한국전쟁이후 인스턴트 커피가 헤게모니를 잡고 있던

이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일본식 커피를 소개한 분들이라고나 할까?

   

     (사실 일제시대에도 드립커피였는데... 한국전쟁으로 명맥이 끊기고

      미군의 전투식량인 C레이션에 포함된 인스턴트 커피를 계기로

      인스턴트 커피를 즐기던 것이 다시 드립커피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일 서는 1980년대에 활동했던 서정달 선생이고 


쓰리 박은 과거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와 1990년대 부터

한국의 커피계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한 세 명인

박원준 선생, 박상홍 선생, 박이추 선생을 지칭한다.



먼저, 서정달 선생(작고)은 1980년대 명동 미도파 백화점(현재 롯데 영플라자 자리)에 있는

커피샵에서 융드립으로 명성이 높았었다.


다만, 이 분은 따로 자신의 블랜딩이나 로스팅, 드립 기술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하지 않아

돌아가신 이후 과거와 같은 융드립 커피의 맛을 보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https://news.joins.com/article/3755449 기사 일부 발췌



박원준(작고), 박상홍(미국 거주), 박이추(강릉 거주)의 세 분 중


박원준 선생은 이화여대 앞에서 '다도원'을 운영하며 고노 드립 등으로 유명했으나

2008년 작고하시며 더 이상 명맥을 찾기는 쉽지 않다.


박상홍 선생은 오사카 출신으로 일본 곳곳의 커피 맛본 후 한국에 왔는데

마도로스 박이라는 별명이 그를 소개하듯

약 6년 간 배를 타고 많은 곳을 여행하며 커피 맛을 보고 연구하였으나

이제는 미국에 정착한 관계로

한국에서 그의 커피 맛을 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15년 카페 뮤제오(caffemuseo.co.kr)와 인터뷰 당시



박이추 선생은 일본 국적 교포에서 1990년대 한국으로 귀화하신 분으로

도쿄의 '깃샤텐'이라는 학원에서 커피를 배워서 한국으로 왔다고 하는데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분이다.


이 분은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을때 훗카이도 지역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일을 배우고

한국에 와서 협동 농장 방식을 적용하려다가 목장 땅 소유권 분쟁 등으로 결국 목장일을 포기하고

여행차 갔었던 도쿄에서 우연히 커피를 접하고 그 향에 반해 

깃샤텐이라는 커피 학원에 등록하고 시작한 것이 바로 개인적인 커피 경험의 시작이고


1988년 혜화동 로터리(현재 엘빈 자리)에 가배 보헤미안을 오픈 한 것이 

한국에서의 커피 커리어 시작이다.


    (이때부터 서정달 선생, 박원준 선생, 박상홍 선생, 박이추 선생이 모임을 갖고
     커피에 대한 지식을 나누게 되었는데

     일 서, 쓰리 박이라는 말이 이때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그는 90년대 초에 고려대가 있는 안암동에 인터네셔널 보헤미안을 이전 오픈하고

다시 강릉 연곡면에 추가 샵을 오픈하게 되면서 현재의 강릉 커피 문화가 만들어지게 된다.

(아직도 안암동에는 보헤미안이 남아있다.)


    (혜화동에서 안암동으로 옮긴 이유가 당시 데모가 잦고 격렬하여
     최루탄 영향이 너무 많아 영업이 쉽지 않아서인데,

     안암동으로 옮기고 나니 커피를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시 2004년 강릉 연곡면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안암동 보헤미안 시절,

그곳을 자주 찾던 교수가 단국대 사회교육원 커피 전문가 과정을 만들겠다고

그에게 상담을 받고 간 것이 2000년 2학기 단국대 천안 캠퍼스에서 지도교수를 하게되고

이 인연으로 단국대 서울 캠퍼스 지도교수,


2003년 부터는 강릉 원주대에서 바리스타 양성 과정을 지도하게 된다.


이제는 과거 일 서, 쓰리 박 중 막내로서(이제 80대 이신데)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강릉 지역에서 커피 나무를 키울 수 있는 보헤미안 매장을 추가 확보하고

서울 지역으로도 추가 매장을 상암동 지역에 오픈하였을 뿐 아니라


2016년 라오스 지역에 커피 농장 약 6,000평을 매입하며 커피 관련 행보를 넓혀가고 있다.

(커피 나무 심은 지 3년 후부터 수확이 가능하다고 하니 아마 20년부터는 여기 커피를 만날 수 있을 듯) 

한국 커피계의 역사(조선 시대 부터 스타벅스까지)

 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에 커피가 처음 소개된 것은

아마 아관파천 기간인 1896년에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처음 커피를 맛본 내용 으로 알고 있다.

(아관파천은 1896년 2월에서 1897년 2월 기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을 이야기 하는데

 이때 친일 내각이 해체되고 친러 내각이 수립되는 등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으로 붉은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아직도 서울 중구 정동에 가면 볼 수 있다.


하지만 아관파천과 관련된 커피의 스토리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일종의 날조로서

1886년 당시 조선의 관료였던 윤치호가 중국 상하이에서 쓴 일기에

'돌아오는 길에 가배관에 가서 두 잔 마시고 서원으로 돌아오다' 라고 적혀 있는 걸 보면

고종이 최초로 커피 맛을 본 조선인 같은 것은 아니고  


1884년 3월 27일 자 '한성순보(1883년 창간)'에 커피를 언급한 내용이 있고

('이탈리아 정부는 시험 삼아 차와 가배를 시칠리아 섬에 심었다'는 내용)

초대 주한 영국영사를 지냈던 윌리엄 칼스의 저서(Life in Corea, 1888년 출간)에도

'1884년 5월 조선에 부임하면서 숙박 시설이 없어 조선 세관 책임자인 묄렌도르프 집에서 묵었는데

뜨거운 커피가 제공되 고마웠다' 는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보면



1880년대 커피는 이미 조선에서 서양 근대화의 상징이었고 새로운 문화를 주도하는 하나의 콘텐츠 였고

당연히 고종은 아관파천 전에 이미 커피를 접해서 즐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 커피는 '서양의 검고 쓴 맛이 나는 한약 탕국'이라는 뜻에서 '양탕국(洋汤)'으로 불렸고, 가배차/가비차 이렇게도 불렸는데 이는 중국어 咖啡(KaFei, 한국식 독음은 가배)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902년에는 서울 정동의 이화여고 자리에 설립되었던 손탁호텔 1층의 정동구락부에

한국 최초의 대중 커피숍이 오픈하였으나 너무 비싼 가격에 소수의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었으나

입소문을 타고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 나갔고,



이런 인기에 힘입어 동아 일보에서는 1920년~1930년대에 '카피(커피)의 효력'이나 
'카피(커피)차 끓이는 법' 등의 커피 관련 기사를 내기도 했었다.



1945년 일제 강점기를 벗어났으나 혼란한 시기라 커피 문화의 발달은 쉽지 않았고

1950년 바로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한국에 들어온

미군의 군용 야전식량 'C레이션'에 포함된 '인스턴트 커피'가 소개되었고


미국의 씨레이션, 식사류 외 설탕/소금 그리고 담배와 껌 등이 함께 들어있고 붉은색으로 표시한 부분에 인스턴트 커피가 있다.


이 인스턴트 커피는 당시 명동 일대에서 성황리에 운영되었던

'마돈나', '모나리자', '플라워' 등에서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 커피는 경제 개발의 과정에서 외화 낭비의 주범으로 몰렸지만

오히려 청년 층으로 확산되었고 정부는 외화 반출 통제, 세수 확보 등 목적으로

한국 국적의 커피 업체 설립을 인가하게 되는데 

이렇게 하여 1968년 5월 동서커피가 인천 부평에서 설립되었다.

   (그리고 이 동서커피가 한국 업체 최초로 인스턴트 커피를 개발하고

    심지어 1976년 12월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를 개발한다)

   - 참고로 동서커피는 Kraft Foods와 (주)동서가 50%/50% 지분으로 설립한 JV


1970년대에는 음악 전문 다방이 유행하며 비싼 커피의 소비처가 되었으나

1980년대 들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자판기 커피가 본격 도입되면서

동서식품과 네슬레 인스턴트 커피 제품이 경쟁을 크게 하였고

이 과정에서 점점 더 커피의 대중 접점이 넓어지며 수요가 확대되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1990년 1월 대상(과거 업체명 미원)이 '나이스데이'라는 커피전문점 1호를 내면서

기업형 커피전문점이 활성화 되었고

한편으로는 맥스웰/레쓰비/네스카페 등이 캔커피 시장을 확대하였다.



하지만...

1999년 커피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 일어났으니...

바로 1999년 7월 이화여대 근처에 스타벅스 1호점이 오픈한 것이다.



이 스타벅스의 출현으로 현재의 대한민국 사람 대다수가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되거나

마시지는 않더라도 인지는 하는 상황으로 발전하여 현재에 이르게 된다.






2023년 6월 11일 일요일

유튜브에서 음원 추출하기...(검색해보니 광고나 피싱으로 낚으려는 사이트가 많아서...직접 찾고 기록함)

 동영상을 만들다가 배경으로 쓸 만한 음악을 유튜브에서 다운받으려고


구글에 음악만 다운 받는 방법을 찾았다.


대충 아래와 같이 많은 내용들이 나오는데...


문제는 하나씩 들어가보니 전부 나를 낚으려는 내용 밖에 없다는...


그래서 찾고 찾다가 이슈 없이 작동하는 곳을 찾았다.


https://yout.com/



여기인데.. 들어가면 아래와 같이 나온다.. 



위에 직접 다운로드를 시도해보니... 



광고없이 다운이 된다...


(근데, 문제가... 다운로드 속도가 빠르지가 않다...)






2023년 5월 13일 토요일

처음으로... 골프장에 갈때(머리올릴때...) 참고할 글

 골프를 열심히 연습했는가?


이제 처음으로 골프장 소위 필드에 나가는가?


축하한다.


그러면 이제 아래 글을 참고하자!




골프백에 채를 담아가는데 PGA룰에 따라 종류에 상관없이 14개 이내로 챙겨야 한다.

그리고 골프백에 반드시 본인 이름이 붙어있어야 한다.
(이유는 아래서 다시 설명한다)


보스턴백은 갈아입을 신발과 옷 등을 챙겨오는데 안에
세면백 같은 작은 백을 별도로 챙겨온다.

보스턴백에 신발을 넣어야 하니 별도 수납되면서 모양도 유지되는
Hard Shell이 좋다.




당일에 반드시 티업 시간보다 최소 40분이상 먼저 도착해야 한다.


아래서 언급하겠지만 티업 전에 함께 밥을 먹는 경우도 많고
생각보다 도착해서 어리버리하면 시간 금방 간다.


만약 늦거나 못가더라도 비용 전액을 부담한다고 생각해야 하며
매우 특별한 이유 없이 늦거나 하면 그 사람들과 다시 골프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아침 골프의 경우에는 보통 각자 체크인하고 식당에서 만나서 함께 아침식사를 하면서
친목을 다진다. 

따라서, 새벽에 아침밥 먼저 먹고 오거나 하지 말고 동반자(보통 골프에서 함께 치는 사람들을 동반자라고 한다)에게 물어보자.


골프장에 도착하면 아래와 같은 순서로 진행하면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4번 !!! 

골프장 직원들이 트렁크에서 내 골프백을 빼서 골프 카트에 미리 실어주기 때문에
골프백에 내 이름이 정확히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보스톤백도 트렁크에 넣어두면 함께 빼서 클럽하우스 입구에 놓아두니
주차 후 보스톤백만 들고 들어가서 체크인 하자.


이제 체크인이다.


체크인 후 라커룸으로 들어가는데...




중요한 것 두가지는 1. 자동차 키를 챙긴다. 2. 현금을 챙긴다.

자동차 키를 챙기는 이유는 보통 라운딩 후 바로 골프백을 차에 실어야 하는데
차키가 없으면 골프백을 넣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금은 캐디피를 현장에서 지급해야 하는데...
보통은 1인당 10만원씩 각출하여 게임을 하고... (아 내 돈 털리네... 도시락처럼)

골프 라운딩 끝나자마자 카트에서 남는 게임비와 추가 각출을 통해
캐디피를 정산하기 때문이다.
(보통 N빵을 하는데... 캐디피는 23년 5월 경기도 기준 15~16만원이다)


이제 라커에서 옷도 갈아입었겠다..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하고
라운딩을 준비하면 된다.

































2023년 5월 9일 화요일

20년~21년 건설된 아파트는 주의해야 한다는 블라인드 글에 달린 댓글 그리고 5월 9일자 뉴스

작년 초에... 





어떤 사람이 블라인드에 위와 같은 글을 올리고...

그 글에 모 건설사 직원으로 인증한 사람이 아래와 같은 댓글을 달았는데...


오늘 아래와 같은 뉴스가 나왔다...


https://www.hani.co.kr/arti/economy/property/1091062.html






2023년 5월 6일 토요일

[협력 전략 MBA #6] 성공적인 제휴를 위해 해야 할 것들 (5. 운영 및 갈등)

 협력 전략에 대하여 아래의 글을 참고해 보자


The Renaissance Man: [협력 전략 MBA #1] 기업 전략의 성공 위한 다양한 전략들... (trmcap.blogspot.com)


협력 전략의 단계로서 1. 전략적 타당성 검증, 2. 파트너 정합성 검증, 3. 제휴 디자인을 이야기 했는데





1. 전략적 타당성 검증은 아래의 글을 참고하면 되고


2. 파트너 정합성 검증은 아래의 글을 참고하면 되며



3. 제휴의 디자인은 아래의 글을 참고하시고



마지막으로 4. 사업 시작에 있어서의 관리 및 통제는 아래를 참고하자



그러면 JV 운영 과정에서의 갈등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 코자 한다.



먼저 JV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갈등이 없을 수 없고 이를 없애는 것이
좋은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건전한 갈등은 필수 불가결이고 갈등은 관리해야 한다)

그러면 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아래와 같은 방법을 생각해 보자.

1. 파트너사들의 목표 일치화
   (Win-Win 전략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

2. 당사자들 간의 적절한 의사소통 보장
   (타협은 필수적이고 타협하고 싶지 않으면 JV를 해서는 안됨)

3. 갈등 해결을 위한 표준 절차 개발
   (갈등 상황에서 해결을 위한 표준 절차가 있으면 좋음)

4. 자사의 이익극대화 보다는 모든 당사자들의 이익을 고려
   (모든 stakeholder 가 이익을 유사하게 받을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함)

5. 상대방의 관점을 신속하게 이해
   (갈등 존재 자체를 없앨 수는 없어도 상대방의 견해를 이해하면
    그 다음 단계가 쉬움 - 공감능력)

6. 의사결정시, 현지 관리자들의 권한을 강화
   (현지에서 잠정적으로 체결된 협의가 HQ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협상을 다시 해야하며 이럴 때는 분쟁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음)

7. 다른 국가 문화에 대한 포용력과 이해력을 높임
8. 모든 당사자가 합작투자 기업 운영에 몰입하고 있음을 보장
9. 미래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논의

7~9번은 너무 당연한 내용이라서 추가 설명은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