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이야기한 새로운 영역의 업무는 경리, 자금, 총무, 인사, 대외, 안전, 환경, 보안 등의 업무를 이야기하는데, 사실 처음에는 하나도 모르겠다가
2026년 2월 8일 일요일
법인의 CFO가 되었을 때 살펴야 할 것들 #1
앞에서 이야기한 새로운 영역의 업무는 경리, 자금, 총무, 인사, 대외, 안전, 환경, 보안 등의 업무를 이야기하는데, 사실 처음에는 하나도 모르겠다가
2025년 8월 31일 일요일
25년 8월의 한미정상회담을 바라보며
지난 8월 25일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DC에서 처음 만나는 한미정상회담이 있었다.
회담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SNS에 한국에서는 혁명이나 숙청 같은 상황아니냐는 글을 올려서
이번 회담이 어떻게 되려나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만나자 분위기는 의외로 부드러웠고 실제 회담은 화기애해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위 내용은 워싱턴 포스트의 뉴스를 캡쳐한 내용인데, SNS 내용이 오해이고 대통령 당선에 축하인사를 했고, 성과를 칭찬하는 농담을 덤지는 것 등을 보면 확실히 우호적인 분위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한미정삼회담은 "당신이 피스 메이커를 하면 나는 페이스 메이커를 하겠다" 등의 농담으로 신뢰를 쌓으며 끝났고 아래와 같이 한미정상회담에 대해서 좋은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5082910375617652?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
과연 어떤 구체적인 성과가 있었던 것인지 한 큐에 정리하는 내용이 찾기가 어려워 직접 정리해 보고자 한다.
성과 정리
1. 추가 인상, 추가 인하 등의 관세 내용이 언급되지 않았다. (변화가 없는게 오히려 좋을 수도...)
- 상호 관세에 대해서 추가적으로 논의가 되지 않고 일본과 비슷하게 현상태를 유지시키는 것이 오히려 적절하다는 판단이다.
- 바로 어제 미국 법원에서 트럼프가 행정명령으로 진행하고 있는 상호관세에 대해서 위법하다는 내용이 나왔는데, 이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보면...
- 이번 정상회담처럼 미국의 상호 관세에 대해서 트럼프와 적극적으로 협상하여 우리 것을 더 내놓고 관세를 줄이는 것보다는 변화를 최소화하여 우리 것을 지키며 다른 국가 수준에 맞춰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는 것 같다.
2. 공동 성명이 없었다.
- 공동 성명이나 문서 발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 국가의 미팅 분위기라고 볼 수 있다.
- 애초에 관세 등에 있어 변화를 바라지 않는 전략에서 분위기 맞춰가며 일본 등 다른 국가 대비 튀지 않고자 노력했는데 굳이 공동 성명 등을 만들 필요가 있는가?
- 만약 공동 성명을 넣고자 했으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야 했고, 우리가 민감해하는 것들을 내줘야 하고 그러면 여러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 이런 내용들은 주간 조선에서도 어느정도 다루고 있는데, 더 관심있는 분들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서 보시면 좋을 것 같다.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44259)
3. 산업 협력 확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었다.
- 조선업, 반도체 및 원자력 등 첨단 제조업 그리고 투자 확대에 대한 내용이 충분히 논의되었다.
- 몇 개의 신문만 검색해도 아래와 같이 내용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4. 북한 외교 관련 방향에 대해서 공감대를 이뤘다.
- 아래 뉴스 기사와 같이 북한 뿐 아니라 중국에 대한 외교 접근법에 대해서 공감대를 이뤘다고 하니,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어느정도 낮아지는 효과가 생긴다.
이러한 성과들은 아마 한미정상회담 전에 한일정상회담을 진행하며, 기존 국가간 약속이라고 했던 것들을 지키겠다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과거대비 상당히 낮아졌고 충분히 논의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관련 내용은 아래 기사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44328
물론 위에 별도로 캡처한 내용대로 윤석열 정권 때 일본 정부와 협의해서 만들어놓은 강제징용에 대한 '제 3자 변제' 등 피해자들이 극구 반대하는 방침을 유지하기로 한 것 등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보면, 확실히 실용주의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2025년 7월 6일 일요일
한자 문화권 면(麵)의 기원과 문화, 그리고 초기 문명과의 관계
가끔 라면이나 칼국수 같은 면(麵)을 먹을 때면
한자 문명 권역에서 면(麵)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휴대성과 저장성
조리의 간편함
생산성 향상과 사회적 영향
2025년 7월 5일 토요일
시진핑 실각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시진핑의 권력은 어떻게 세워졌고, 지금은 어디로 가고 있나
최근 시진핑의 권력이 위험한 것 아닌가? 라는 의혹 제기 뉴스가 나오더니 얼마 전에 중국 생활을 함께 했던 분들의 모임에서 시진핑의 독재가 끝나가는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동시에, 이게 하루 이틀 이야기냐고.. 몇 년전부터 들은 썰만 몇개라는 이야기도 함께 ㅎㅎ)
사실 중국 정치권에서는 시진핑 실각설이 주기적으로 떠오른다. 작년에도 나왔던 이야기고 올해 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중국의 정치 체제 특성상 내부 사정은 철저히 비공개되기 때문에 진위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야기가 계속 반복되는 이유는, 시진핑을 중심으로 한 권력 구조가 어딘가 불안정하다는 의미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번에 이런 저런 검색과 정리를 통해 시진핑이 어떤 과정을 통해 권력을 쌓았는지, 지금의 권력 구조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실각설이 나오는 배경에 어떤 맥락이 있는지도 함께 짚어보고자 한다.
1. 시진핑의 권력 장악 과정
태자당 출신이지만 순탄치 않았던 성장 과정
시진핑은 1953년 중국 혁명 원로였던 시중쉰의 아들로 태어남. 그래서 일반적으로 ‘태자당’ 출신으로 분류됨
하지만 문화대혁명 때 아버지가 숙청당하면서 지방 하방 생활을 겪게 되었고 이복누나가 죽는 등 여러 사건을 겪음
또한 공산당 입당도 10차례 이상 거절당하다가 문화대혁명의 영향이 낮아진 1973년에야 입당할 수 있었다고 함
청년 시절의 엘리트 코스와 군 인맥 확보
1975년 칭화대학에 无시험 추천으로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중앙군사위원회 비서로 일하며 군 인맥을 쌓았음
이러한 군과의 연결 고리는 이후 시진핑의 권력 기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침
(장쩌민이나 후진타오는 권력을 잡은 이후 군권을 잡는데 시간이 걸렸는데 반해 시진핑은 군권을 바로 확보하게 됨)
지방 근무를 통한 상하이방 등 다양한 파벌의 인맥 확보
시진핑은 소장파 시절 허베이성, 푸젠성, 저장성, 상하이 등 동남부 핵심 지역에서 행정 경험을 쌓으며 성장함
이 과정에서 태자당 뿐 아니라 상하이방과도 인연을 맺었으며, 양쪽의 신뢰를 동시에 얻는 위치에 서게 되는데,
형성한 인맥은 훗날 ‘시자쥔(習家軍)’이라 불리는 핵심 세력의 뿌리가 됨
경쟁자들이 사라진 타이밍
동시대 주요 경쟁자들이 부패 스캔들 및 정치적 의혹으로 연이어 실각하게 됨
- 보시라이는 배우자의 살인 사건, 부패 혐의, 정변 시도 등으로 몰락
- 링지화는 아들의 페라리 사고 이후, 축적된 부정부패가 드러나며 무너짐
이런 상황 속에서 시진핑은 파벌 간 타협의 대안으로 부상하게 되었고,
양측 모두에게 ‘무난한 카드’로 받아들여졌다고 함
(그래서 장쩌민이 후진타오에게 권력을 넘기며 격대지정으로 시진핑을 낙점!)
(원래는 후진타오 다음에 리커창이 할 수도 있었는데... 이건 나중에 별도로 이야기 해보겠음)
2. 시진핑 向 권력 집중의 방식
초기부터 군과 당을 동시에 장악
2012년,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함께 맡게 되면서 권력 기반이 단단해지는데
이는 시작부터 군과 당을 동시에 장악한 드문 사례에 해당함
반부패 명분으로 정적 제거
시진핑이 권력을 잡은 직후 ‘호랑이든 파리든 다 잡는다’는 구호 아래, 반부패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함
(푸틴도 올리가리히를 잡으면서 인기도를 높였는데... 역시, 부패를 잡는다는 만고진리의 명분인 듯)
정치적 정적을 다수 제거했고, 그 자리에 측근들을 배치해 세력을 강화함
또한 군 내부 인사 개편도 병행하여 권력을 더욱 집중 시켰음
장기 집권 체제로 전환
2018년에는 헌법을 개정해 국가주석 2연임 제한 조항을 삭제
2022년 20차 당대회에서는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을 측근 인사로 채우며
집단지도체제를 사실상 종식시키는 데 성공
3. 현 시점에서 실각설이 반복되는 배경
악화된 경제 상황과 내부 반발
2020년 리커창 前 총리는 “중국 인구 6억 명이 월 1천 위안도 벌지 못한다”는 폭탄 발언을 했음
이는 시진핑의 빈곤 퇴치 성과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인데,
(사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둘이 싸우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긴했음)
리커창은 이후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 시작함
군부 內 대규모 숙청
최근 로켓군 고위 인사들이 연이어 해임되거나 실종되며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모습이 연출됨
이 사건은 기밀 유출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숙청 대상자들은 주로 태자당 계열 인물로 분류
(미국에서 유학하던 로켓군 고위 장교 자녀가 조직도, 부대 위치 등을 넘겼다는... 썰이 있음)
이 과정에서 시진핑 측근 내부에서도 숙청설이 퍼지며 권력 내 갈등 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커짐
(내 생각에 이게 젤 큰 것 같음. 믿었던 형한테 배신당한 동생이라고 느끼고 군이 시진핑에게 충성을 지속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싶음)
집단지도체제 복원의 조짐
최근 중국군 공식 매체에서는 ‘개인은 집단 위에 설 수 없다’는 논평이 게재됨
이는 현재의 권력 구조에 대한 견제 시그널로 해석되는데... (시진핑이 이걸 그냥 둘까?)
또한 당내 결정 구조를 정치국 중심으로 정상화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남
베이다허 회의와 새로운 파벌 구도
7월 말 열릴 예정인 베이다허 회의에서는 기존 파벌 간의 관계 재정립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고 함
실각은 너무 큰 변화이므로 항상 질서있는 퇴진 등을 이야기 하는 중국의 행태를 볼 때
시진핑의 권력이 한번에 없어지기 보다는 단계적인 권력 조정이나 균형 재설정 시나리오가 유력해 보인다고 함
정리하자면
시진핑 체제는 전례 없는 권력 집중을 이뤘지만,
그만큼 내부 균열이나 도전 가능성도 함께 존재하게 만들었음
내가 볼 때 실각이라는 단어 자체보다 중요한 건,
권력 기반에 어떤 종류의 흔들림이 감지되고 있는지를 읽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함
중국 정치의 핵심은 단순히 한 사람의 부상과 하락을 넘어,
그를 둘러싼 구조와 세력 간의 역학 관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