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지벽(和氏之璧)의 세번째 이야기는 옥새(玉璽) 이야기 이다.
다른 글에서 언급한 완벽귀조(完璧歸趙) 사건이 있은 후에도
진나라와 조나라 간에는 몇 번의 큰 사건이 있었으나
인상여의 활약으로 위기를 넘어갔다.
(예를 들자면 민지의 연회라던가....)
하지만 인상여가 명을 다할 무렵
진나라 소양왕의 증손자가 진나라의 새로운 왕이되고
이 증손자가 인상여 없는 조나라를 무너뜨린 후 중국을 통일하여 진나라 시황제(첫 황제) 즉 진시황이 된다.
진시황은 통일 후 얻게된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옥벽을 가져오게 하여
再 가공을 통해 옥새(玉璽)로 만들게 한다.
이 옥새에는 ‘수명우천受命于天 기수영창旣壽永昌’ 이라는 글귀를 넣었는데..
이 글귀의 뜻은 하늘에서 명을 받았으니 그 수명이 영원히 번창하리라 라는 뜻이다.
이렇게 제작된 옥새(玉璽)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어졌는데
그렇게 된 사연은
진시황이 동정호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배가 뒤집힐 정도의 풍랑을 만났을 때
옥새를 호수에 던졌더니 풍랑이 멈췄다고 하며
(왜 이때 옥새를 호수에 던졌는지는 모르겠다..)
몇 년 후에 그 옥새가 다시 어부가 건져서 진시황에게 바쳤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진시황은 옥새가 자신에게
뭔가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황제만이 가질 수 있는 보물로 여겼고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도 옥새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코에이 사에서 만든 삼국지 게임에서는 옥새 아이템을 가지고 있으면 매력이 100으로 오른다)
이 옥새는 진나라가 망하고 초한 전국을 거쳐 한나라, 위촉오의삼국지를 거치고
다시 위진남북조, 수 및 당나라 까지 전달되는데….
우선 여기까지가 옥새 이야기의 시작이다.
화씨지벽(和氏之璧)의 두번째 이야기는 완벽(完璧)과 하자(瑕疵)이다.
이 화씨지벽 스토리에 언급된 옥벽은
나중에 조나라로 넘어가게 되어 조나라 혜문왕이 소유하게 된다.
이 옥벽에 대한 소문을 들은 진나라의 소양왕은 진나라의 15개 성과 옥벽과 바꾸자고 제안하며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전쟁을 할 것이라고 협박한다.
진나라의 군사력이 조나라 보다 월등히 높았으므로
당연히 조나라 혜문왕은 엄청난 고민을 하게 되었고
혜문왕의 신하 중 한 명인 인상여라는 사람(문경지교로 유명한 춘추전국시대 후기 인물)은
자기가 옥벽을 온전하게 보전하여 조나라로 돌아오겠다는 ‘완벽귀조’(완전한 옥벽 상태로 조나라로 돌아오다) 라는 다짐을 하게되고
이 ‘완벽귀조(完璧歸趙)’ 라는 말에서 완벽(完璧)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아무튼 이 인상여는 조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가서
진나라 소양왕에게 옥벽을 바치고
15개의 성을 불하하는 문서를 달라고 하는데..
당연히 진나라 소양왕은 15개의 성을 조나라에 줄 생각이 없어서 인상여의 말을 무시하고 옥벽만 감상한다.
(애초에 15개 성은 그럴듯한 명분으로 만든 협박이었으니)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러도 인상여의 요청이 묵살되자
인상여는 꾀를 내어 진나라 소양왕에게
이 옥벽은 한 눈에 보기에는 완벽하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흠집(흠집 하 瑕 라는 글자를 쓴다)이 있는데
자신이 직접 왕에게 어디있는지 알려주겠다고 하여
잠시 옥벽을 돌려받게 되고,
옥벽을 돌려받은 인상여는 받자마자 옥벽을 높이 들며 15개의 성을 준다는 문서를 먼저 내놓지 않으면
옥벽을 깨트리고 자기도 죽겠다고 협박을 한다.
여기서 하자(흠집/티 瑕, 흠집 疵)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이에 진나라 소양왕은 그를 달래고자 15개 성을 주겠다고 하자
5일 간의 시간을 갖고 문서를 작성해서 달라고 하며 시간을 벌고
그 날로 사람을 시켜 옥벽을 조나라로 보내버린다.
5일 후에 옥벽이 이미 조나라로 넘어간 것을 알게 된 진나라 소양왕은 인상여를 죽이려고하나
이런 담이 크고 천재적인 딜을 한 인재를 죽이면
세상 사람들의 신임을 잃게 된다는 신하들의 제안에
인상여를 더 달래서 조나라로 돌려보내게 된다.
이 이야기를 가지고 명나라 시대의 왕세정이라는 사람은
인상여완벽귀조론 이라는 글을 써서 인상여를 칭송하였고
이 글에서 ‘완벽(完璧)’과 ‘하자(瑕疵)’라는 말의 의미가 확정되게 된다.
화씨지벽(和氏之璧)이란 화(和)씨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초나라 왕에게 바친 벽(둥근 옥 璧)을 이야기 하며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보물의 의미로 쓰인다.
(참고로 이 화씨지벽 이야기는 한비자 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임)
변화(卞和, 이름이 변화라는게 아니고 ‘卞’ 지역에 살던 ‘和’씨 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라는 사람이
산에서 옥의 원석을 발견하고는 초나라의 왕(초여왕)에게 바쳤는데
당시의 감정사가 옥의 원석 상태를 보고 이게 좋은 옥이 아니고 보통 돌이라고 감정하자
그 이야기를 들은 초여왕 역시 이 옥 원석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채
화가 나서 변화의 한 쪽 발목을 잘라버리는 형벌을 내린다.
당연히 변화는 매우 억울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초여왕이 죽고 초무왕이 새로운 초나라 왕이 되었다.
그래서 변화는 다시 초무왕에게 옥의 원석을 바쳤는데,
초무왕도 그 옥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채 보통 돌을 상납하고
벼슬이나 돈을 받으려는 시도로 판단하여
초무왕은 변화의 남은 한 쪽 발목을 잘라버리는 형벌을 내린다.
그렇게 변화는 좋은 옥을 진상하려다가
양쪽 발목이 다 잘린 채로 혼자 산속에 장애인으로 살았다.
시간이 더 흘러 초무왕이 죽고 초문왕이 등급하자
변화는 다시 옥의 원석을 초문왕에게 바치려고 하였으나
이미 그의 양 발목은 끊어져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변화는 억울함에 계속 울었고 나중에는 눈에서 피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나중에 사람들이 변화에게 왜 우냐고 물었더니
나는 발이 잘려서 우는 게 아니다.
보옥이 돌이 되고 정직한 사람이 거짓말쟁이 취급받는 것이 슬퍼서 운다고 이야기 했다.
이런 변화의 괴이한 행동과 피눈물은 소문을 타게 되었고
초문왕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래서 초문왕은 그 옥의 원석을 가져오게 하여 최고의 감정사에게 정밀 감정을 시킨다.
그렇게 정밀 감정 결과 이 옥은 엄청난 보물임이 밝혀지게 되어
초문왕은 이것을 아름다운 옥벽(납작한 원형 모양의 장식품)로 가공하여 소유하였고
같은 시기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옥벽
여기에 대한 보답으로 초문왕은 변화에게 평생 편하게 살수 있는 벼슬을 주었다고 한다.
(이 옥벽은 뭔가 특이했다고 하는데 여름에 시원하고 해충이 범접하지 못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이 이야기는 한비자를 쓴 한비가 작성하여
진시황에게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말로 설명해 주었는데
진시황은 한비의 숨은 뜻을 파악하고 바로 한비를 등용하게 된다.
(결국 자기가 숨은 옥의 원석이니 빨리 등용하라는 뜻)
여기까지가 화씨지벽(和氏之璧)의 시작이야기 이다.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후 이 화씨지벽을 얻게되고 이것을 다시 옥새로 가공하여 황제의 징표로 삼아... 현대 중국 공산당 스토리에서 까지 등장하게 된다.)